2012/10/17 21:05

[초역 백인일수 우타코이] 우타코이의 여성들. 미디어 감상

오늘 언급할 사람은 데이시와 무라사키시키부.
.....왜 상관도 없는 두 사람을 묶어서 리뷰하느냐면 말이지요....
저는 백합에는 조예가 일절 없으므로.... 아마도 쓸 말이 길지 않을까 하여.

세이쇼나곤이 나온다는 예고를 들었을 때 제가 특히 기대한 것은 세이쇼나곤의 주군, 이치죠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존재였습니다. 그야 [마쿠라노소시]에서 데이시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게 해놓았으니까요! 광택 어린 벚꽃빛 겹옷을 아리땁게 차려입고, 그 위에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비단처럼 늘어뜨리고, 비파를 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백거이의 [비파행]의 여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애초에 그 여성은 은퇴한 기녀라는 처지에 감도는 애수가 더욱 아름다운 거라구요-ㅁ-) 소녀 같고 아름다운 왕비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 속에서의 데이시 님은-
으-음..... 미묘하네요....
지적이고 우아한 모친(다카코 님)을 닮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제가 생각했던 반짝반짝 핑크 블링블링한 왕비님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이미 작품의 이 시점에서 데이시 님은 아버지 미치타카가 죽고 오빠인 고레치카가 실각하여 그 책임을 짊어져 한 번 출가까지 했다가 환속한 상황.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다시 보니 머리카락도 짧은 것이.... 비록 헤이안 시대의 비구니는 머리를 빡빡 밀지 않지만,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인 시대에 어깨까지라도 싹둑 잘랐다는 것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지.
그렇게 생각하며 보면 데이시 님의 의미심장한 말도.... 그 스러질 것 같은 모습도 애처롭기만 한 것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

그 밤에 맺은 약속을 잊지 않는다면
사랑으로 흘린 눈물의 색깔은 어떠할까



그리고 무라사키시키부-
[무라사키시키부 일기]의 내용이나 [겐지 이야기]를 볼 때 도무지 밝은 성격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작가입니다만. 과연 이 작품에서도 다소 우울하고 궁중에 적응하지 못하는 처자입니다.
그녀가 슬럼프에 시달리면서도 장안에 대호평인 작품! [겐지 이야기]를 쓰게 된 까닭은 겐지 같은 남자가 있어서가 아니고....
바로 카오리라고 불리던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 후지코. 쾌활하고 적극적인 그녀에게 품었던 비밀스런 연심을 그녀에게 칭찬받았던 모노가타리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남자를 따라간 그녀가 도읍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무라사키시키부는 바삐 만나러 가지만.... 후지코는 그녀의 눈앞에서 우차로 떠나가고 맙니다.
후지코인들 어째서 카오리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요. 다만 그녀는 아이를 줄줄이 낳고 애인을 만나러 다니는 남자의 범용한 아내가 되어버린 자신이 보이기 싫어서 길을 서두르고 말았던 것이지요.
후지코의 그런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한 무라사키시키부는- 헤이안 시대라는 여성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대에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겐지 이야기]에 담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각오로 쓴 것이 '아오이' 편이냐!? (아후히, 라고 써있지만 아오이의 다른 표현인듯)

[겐지 이야기]의 '아오이' 편은 말이죠... 제가 [겐지 이야기]에서도 필두로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챕터입니다.
겐지에게 등한시당하게 된 겐지의 애인 로쿠조 부인은 사랑에 번민하다가 접시꽃(아오이) 축제 행렬에서 겐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나가는데요.... 겐지의 정실인 아오이 부인도 겐지의 아기를 임신하여 무거운 몸으로 남편의 근사한 모습을 보려고 나온 겁니다. 세상에 명성이 높은 겐지의 아내를 모신다는 사실에 우쭐해진 하인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숨듯이 서 있던 로쿠조 부인의 우차를 밀치고 작살내버리지요. 로쿠조 부인은 자신의 미행이 들켰다는 수치스러움과 아오이 부인에 대한 질투로 고통스러워합니다. 그 마음이 모노노케- 생령이 되어 출산이 임박한 아오이 부인을 괴롭히고, 결국 아오이 부인은 아기를 순산한 보람도 없이 생령의 저주로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비로소 아오이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던 겐지는 크게 상심하고.....
49일 상이 끝나자
아직 소녀에 불과했던 무라사키 아가씨를 낼름 잡아먹어버립니다

......

이 아청법으로 잡혀가 고문당해 뒈질 놈을 봤나?!(의미불명)
여기 어디에 여자의 강함, 여자의 아름다움이 있단 말입니까?!ㅠㅠ

역시 무라사키시키부는 순수하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아주 싫은 것도 아니지만.
잘한다 유키나리 더 괴롭혀라(실례)

덧글

  • 동굴아저씨 2012/10/17 23:48 # 답글

    우와.....겐지 이 ㄱㄱㄲ!!
  • 진냥 2012/10/20 11:56 #

    좀 더 충격적인 사실을 덧붙이자면 로쿠조 부인은 죽은 태자의 아내. 즉 겐지에게는 형수가 됩니다*^^*
    ......겐지 ㄱㄱㄲ해봐!!! YEAH!!! 겐지 ㄱㄱㄲ!!!
  • 미치루 2012/10/18 00:23 # 답글

    그거에요...평범한 주부가 보며 좋아할만한 막드를 써서 후지코를 즐겁..게...ㅋㅋㅋㅋ
  • 진냥 2012/10/20 11:56 #

    나, 납득했다아아아!?!?!
  • 百香 2012/10/18 09:38 # 답글

    이 막장 아저씨(!)를 다 봤나.... 겐지 이놈~
  • 진냥 2012/10/20 11:56 #

    이때는 아직 갓 소년을 벗어난 청년 수준이었습니다...
    .....갓 소년을 벗어난 청년의 전적이 이따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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