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4 12:18

[또 다른 바람] 독서 일기

또 다른 바람 / 어슐러 르 귄 지음, 최운영,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2009

어스시 시리즈의 마지막 권... 입니다!
....왜 느닷없이 마지막 권인고 하니 아주 오래 전 학부 시절에 진즉 읽어버렸기 때문에.... [테하누]까지는 줄거리가 기억나는데 이 작품만은 긴가민가해서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다시 읽고 감격해서는 전 권도 사버렸는데... 얼마 전에 작가의 부고가 알려졌지요. 형용키 어려운 감회입니다....

사실 어스시 시리즈에 관해 섣불리 감상을 남기지 못한 데에는 판타지 문학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어떤 이상理想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결론에서 말하기로 하고....
스토리만 훑어보면 매우 전형적이면서도 근사한 모험담처럼 여겨집니다. 평범한 소년이 시련을 거쳐 위대한 현자가 됩니다. 이역만리 무시무시한 지하 미궁을 헤매다 아름다운 소녀를 구출합니다. 왕이 될 자질을 갖춘 왕자와 함께 온갖 신비로운 모험 끝에 죽음의 세계를 넘나듭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만큼은 모험담의 뒷 이야기가 반드시 따라붙습니다. 위대한 현자는 모든 힘을 잃고 무력한 중년 남자가 되어버립니다. 아름다운 소녀도 평범한 사내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마을 아낙이 되어 살다가 혼자 된 몸으로 재회하여 흔해빠진 중년 부부처럼 맺어집니다. 그는 이제 위기에 빠진다 해도 손 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를 구한 이는 여자가 거두어들인 소녀... 출생조차 분명치 않은,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서 지독한 폭력을 당한, 그리하여 반신마저 흉하게 상해버린 소녀. 그러나 그녀는 용의 화신이었습니다. 태초의 인간이자 용인 세고이, 칼레신의 딸.

그리고 하나의 시대가 끝납니다. 용은 태초의 언어와 영원을, 인간은 삶과 찰나를 가지기로 합의했던 약속을 인간이 태초의 언어까지 추구하면서 만든 부자연스러운 벽이 깨어버렸습니다. 오랫동안 깨진 약속에 얽매여 있던 용들은 자유를 얻어 불멸의 존재로서 창공으로 올라 사라집니다.
마법은, 태초의 말은 사라질까요. 어스시는 어떻게 바뀌어갈까요.
우리로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딸을 떠나보내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아내를 맞이하는 늙은 남편을, 오순도순 평범하게 살아가는 노부부를 지켜만 볼 뿐.

저는 예전부터 샤머니즘에 심취해 있었지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정서에 매혹되었습니다. 이 작품, 이 시리즈에서는 그러한 정서가 짙게 묻어납니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인간의 근저를 파고드는 데가 있는....
실로 살아 숨쉬는, 하나의 세계.
이러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음은, 읽을 수 있었음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행복이지만...ㅠㅠㅠㅠㅠ


아, 조금 뚱딴지 같은 이야기인데요... 아주 오래전에 읽었을 때 저는 레반넨 왕이 테하누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리하여 더욱 세세락 왕녀와의 혼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헌데 요번에 다시 읽으니 레반넨과 테하누 사이에 그런~ 분위기는 일절 없더라고요!? 굳이 레반넨이 신경쓰는 사람을 따지자면.... 오리나무??!!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 스승의 집에서 머물며, 그의 조언을 거리낌없이 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리나무!!! 이 무슨 불모의 삼각관계라지요!.....
테하누도 오리나무한테만은 좀 편하게 대하는 것 같으니 이 무슨 마성의 남자란 말입니까....=ㅁ=

하지만 그의 결말은 좀 씁쓸했습니다. 그에게는 굳센이가 있었어요... 생명력 넘치고 맹랑한 새끼고양이가. 굳센이를 계속 보듬고 있었더라면 그런 결말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스즈를 건사하고,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스즈를 위해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런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덧글

  • 은이 2018/04/24 13:29 # 답글

    힘든 바깥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길엔 고양이를 떠올리기도 하지요.
    물론 정확하게는 고양이 ㄸ이라거나 맛동산을 치울 생각이지만..... orz
    그래도 치우고 나서 뱃살부비부비를 하면 치유가...ㅠㅠ
  • 진냥 2018/04/26 10:59 #

    퇴근할 무렵이 되면 스즈를 부비부비할 생각 뿐입니다....ㅠㅠㅠㅠㅠ
    뱃살 부비부비! 부비부비~ 최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