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4 01:39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독서 일기

생강빵과 진저브래드 / 김지현 씀, 최연호 감수, 비채 2020

어린시절 가장 선명한 추억이라면 어머니 지인분이나 친구집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ABE 명작동화 시리즈, [초원의 집] 시리즈를 읽은 것입니다. 누렇게 뜬 페이지, 먼지 섞인 책 내음,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이역의 땅과 내 또라 아이들의 용기와 모험.
또한 오트밀이며 요크셔 푸딩 등 낯선 이름의 요리들은,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야기 속 아이들에 못지 않게 제 입맛도 다시게 했습니다.

이는 저자도 마찬가지- 그리고 저자가 성장하여 번역가가 되자, 이러한 요리의 번역이 추억의 탄생과 향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나요. 그리하여 쓰게 된 이 책은, 추억이 깃든 이야기 속의 요리를 작품 안팎의 맥락과 더불어 되짚어보는 에세이인 것입니다!

과연 명불허전. [초원의 집]은 어김없이 등장! 하지만 이 책에서 작품과 매칭해서 다루는 요리는 젤리, 잼, 설탕절임으로 저를 매혹시킨 요리는 유감스럽게도 언급되지 않았네요.....
느닷없지만 진냥배 [초원의 집] 최고 맛있게 느껴지는 요리는-(드럼 롤)
  1. 돼지꼬리구이. 모 SNS에서 이것을 재현하려고 도전한 분이 계셨는데, 핏물도 빼지 않고 누린내도 없애지 않은 돼지꼬리를 통째로 굽는 것은 현대 한국인의 입맛에 격렬하게 충돌하리라 판단. 돼지꼬리탕으로 선회하셨습니다. 덧붙여 사진도 첨부하셨는데 솔직히 그 거대한 돼지꼬리로 맞으면 사망합니다 ....
  2. 앨먼조가 만든, 당밀을 듬뿍 뿌린 팬케이크. 긴 겨울 시기 다른 집들은 거의 굶다시피 하는 형편이라 엄청 맛있을 것 같다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밀로 접시에 접착되다시피 하여 포크로 찍어 들어올리면 접시까지 딸려 올라올 지경이니 미묘하네요 ....
  3. 히코리나무 태운 연기로 훈연한 베이컨. 베이컨에 대한 영원한 동경을 안겨준 요리입니다. 지금도 코스트코에 가면 설탕단풍나무(메이플)로 훈연한 베이컨 앞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4. 마지막으로 긴 겨울이 끝나고 나서 열린 봄의 크리스마스 만찬의 칠면조! 그레이비 소스와 붉은 보석 같은 크랜배리 젤리를 곁들인!

....이 시간에 꺼내는 화제로는 자폭이군요.


저자의 해석이 흥미로운 작품-요리의 매칭도 있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굴! 저는 이 작품에서 굴 먹는 장면도, 안나의 오빠 오블론스키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읽기 즐거운 작품은 아니어서였겠죠. 그러나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제철 굴이라는 도락과 불륜을 흠뻑 즐기는 오블론스키일지언정 최종적으로는 가정으로 돌아와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반해, 안나는 주어진 인생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했기에 요샛말로(유행 좀 지났나?) '고로시'당한 셈입니다.

[마틸다]의 TV 저녁식사의 평가도 흥미로웠습니다. 직장의 같은 사무실 분들은 한창 자녀를 키우거나 다 키운 부모님들이 많으신데, 이구동성으로 자녀에게 보여줄 만한 영어 뮤지컬로 [마틸다]를 대단히 극찬하시더군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틸다]는 부당하게 억압당한(밥은 한 접시에 올려져 전자렌지에 데우기만 하면 끝나는 인스턴스 식품인 TV 저녁식사만 먹이는 등) 마틸다가 부모를 떠나는 내용입니다.
아동이, 특히 여자가 억압받기 쉬운 이 사회에서- 이제 좋아하는 책을 읽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독자는 저자와 같이 어린 시절에 만난 마틸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이 잔으로 수많은 '마틸다'의 작은 승리에 축배를 들겠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건배하자. 우연찮게 우리가 지금 한 권의 책 앞에 모였으니 말이다.

그밖에도 예전에 대단히 좋아하던 O.헨리의 [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 [팔아버린 웃음], [독신 귀족] 등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했거나 내용을 잊어버린 작품들이 저자의 요리 썰에 의해 급부상하여 읽고 싶은 마음을 절로 들게 만듭니다. 영업력이 심상찮군요!

부록에서는 이러한 고전 작품에서 흔히 묘사되는, 요리와 관련된 장소의 명칭과 형태 그리고 용도를 설명합니다. 찬장, 식료품 저장실, 포치, 테라스, 발코니, 베란다, 페티오 등.... 어린 시절 이게 뭐지ㅇㅅㅇ했던 어린 독서 동지들은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지요.
저는 어른이 되었지요만!


덧글

  • rumic71 2022/11/24 12:57 # 답글

    전 낚시하러갔다가 아침에 모닥불로 팬케익 해먹는 장면이 안 잊혀지는데 정작 무슨 작품인지는 완전히 까먹었네요.
  • 진냥 2022/11/29 02:35 #

    앗... 저도 궁금해지고 말았습니다. 어서 기억해내셔서 리뷰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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